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리엔트 공의회 (문단 편집) == 공의회의 목표 == >거룩하고 갈릴 수 없는 [[삼위일체론|삼위일체]]이신 [[야훼|성부]]와 [[예수|성자]]와 [[성령]]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합법적으로 소집되었으며 사도좌로부터 파견된 3분의 [[교황]] 전권 대사들이 주재하는 거룩하고 세계적이며 보편적인 본 트리엔트 공의회는, 앞으로 다루어질 사안들, 특별히 본 [[공의회]] 개최의 원인이 된 2가지 주안점인 [[이단]]의 근절과 행실의 개혁에 주목한다. 그러한 공의회는 사도([[바오로]])의 말대로 "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"[* 에페 6, 12]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. 또한 사도(바오로)와 더불어 공의회는 모든 이가 "주님에게서 강한 힘을 받아 굳세게 되고,[* 에페 6, 10] 손에는 악마가 쏘는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도록 언제나 믿음의 방패를 잡고 또한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, [[야훼|하느님]]의 말씀인 성령의 칼을 받아 쥐라"[* 에페 6, 16.17]고 권고하는 바이다. 따라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본 공의회의 경건한 노력이 시작되고 진전되도록, 본 공의회는 신경을 맨 앞에 언급하기로 결정하고 선언함으로써 [[교부]]들의 모범을 따르고자 한다. 교부들은 위대하고 거룩한 공의회들을 시작할 때 온갖 이단을 거슬로 이 방패를 세웠고, 오직 이 방패만으로 비신자들을 신앙으로 이끌었고, 이단을 이겨냈으며, 신자들을 굳세게 했다. 그러므로 본 공의회는 거룩한 로마 교회가 사용하는 신경,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이가 반드시 동의해야 하는 원리이며 "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할" 견고하고 유일한 초석인 이 신경이 모든 교회에서 똑같이 낭송될 수 있도록 정확하게 표현할 것을 결의하였다. [[니케아-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|그 신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.]] > >한 분이신 하느님을 >저는 믿나이다. 전능하신 아버지,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. >또한 한 분이신 주 [[예수 그리스도]], 하느님의 외아들,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. >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, 빛에서 나신 빛,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,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. >성자께서 저희 인간을 위하여,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.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[[성모 마리아|동정 마리아]]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. >[[본시오 빌라도]]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[[십자가]]에 못 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,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[[부활]]하시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계심을 믿나이다. 그분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. >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.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,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, [[예언자]]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. >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. 죄를 씻는 유일한 [[세례]]를 믿으며,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. >[[아멘]]. > >트리엔트 공의회 제3차 회기 공의회의 소집 목적은 2가지이다. 첫째는 이단([[개신교]])의 근절, 둘째는 행실의 개혁이다. 당시 유럽을 휩쓸고 있던 [[종교개혁]]에 대하여 가톨릭 교회가 대항한 자체적인 개혁으로서의 의의를 갖는다. 즉,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이 공의회는 진(眞) 종교개혁에 해당한다. 공의회 소집 배경이 이러하니만큼,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가 싸울 때 굉장히 많은 빈도로 언급되는 공의회이다. 트리엔트 공의회에 대한 언급은 공의회가 실제로 소집되기 한참 전부터 의논되었었다. 하지만 공의회는 프랑스의 [[삼부회]]와 같이 중대한 문제가 발발할 경우에만 소집되는 경향이 있었고, 세속적인 권력들이나 반(反)교황 세력들에게 교황의 결정들을 비판할 빌미를 주었다.[* "공의회는 교황보다도 큰 것이다" (concilium major est papa)라는 원칙 때문에 교황에게 공의회 소집은 항상 껄그러운 일이었다.] 게다가 '''루터가 제시한 극단적인 공의회 호소는 이후 교황들로 하여금 공의회 소집에 소극적인 태도를 갖게 했다.'''[* 蔡昌錫, ''14-16C 가톨릭 교회 개혁의 연속성 - 트리엔트 공의회를 중심으로 -'', 대구대학교출판부, 2005년 인용] 결국 공의회가 소집된 것은 [[신성 로마 제국]] 황제 [[카를 5세]]의 요구 때문이었다. 독일에서 시작된 [[종교개혁]]으로 신성 로마 제국은 종교적으로 분열되었는데, 독실한 가톨릭 신봉자이자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로써--[[사코 디 로마|수호자가 아니라 제일 큰 적 같은데]]-- 황제는 개신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. 수십 년에 걸친 탄압에도 불구하고 개신교가 수그러들기는 커녕 오히려 확산되자 카를 5세는 종교개혁에 교리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에 교황청에 공의회 소집을 강력하게 요구했다. 장소를 트리엔트로 결정한 것도 카를 5세였다. 트리엔트는 [[신성 로마 제국]]과 [[합스부르크 제국|합스부르크 세습령]] 안에 위치해 있으면서 알프스 이남 이탈리아의 관문에 위치해 있었기에 황제의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교황과 이탈리아 주교들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. 그러나 교황은 합스부르크 왕가와 대립하는 프랑스의 [[발루아 왕조|발루아-앙굴렘 왕조]]의 [[프랑수아 1세]]와 잉글랜드의 [[헨리 8세]]의 눈치를 보면서 카를 5세가 요청한 트리엔트 공의회 소집을 5년 이상이나 미루었다. 그러다가 1540년대 중반 카를 5세가 앙리 2세의 프랑스를 [[이탈리아 전쟁]]에서, 술탄 물라이 하산의 오스만 제국을 [[튀니스]]에서 잇따라 격파하며 그 권세가 정점에 이르게 되자 마침내 1545년 트리엔트 공의회가 소집되었다. 바오로 3세가 진단한 교회의 악습들은 다음과 같았다: 겸직제 고위 성직자들의 족벌주의, 교회 직책이나 성물을 사고파는 행위인 시모니아, 주교의 교구에 부재현상과 세속화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